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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결혼. #3. 아침 긴 일주일의 피로 탓이었는지, 그녀는 9시가 넘도록 침대에 있었다. 얼마 전 부서장이 바뀌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새로 온 부서장은 본사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고객과의 큰 마찰 때문에 지방으로 좌천이 되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출근 첫날부터 엄청난 히스테리성 잔소리를 퍼부어 되며 사무실 모든 직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종이컵은 왜 이렇게 많이 쓰냐, 사무실 가구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분은 창가에 두어야지, 사무실 정 가운데 두면 안된다는 둥 아주 시시콜콜한 것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갖은 짜증을 부리며, 본인의 가슴속 울분을 다른 직원들에게 완벽히 전가시키고 있다고 했다. 직원 모두들 어떻게든 그 상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을.. 2024. 9. 28.
단편) 창문이 있는 집 "어제는 뭐했어?"  작지만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다.   "어제?"   왜 어제 일을 묻는 것일까?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어제는 별일 없었는데? 그냥 평소랑 똑같았어. 수업 듣고, 도서관 갔다가 밥 먹고 집에 왔지. 요즘 매일 인강 듣느라 바쁜 거 알잖아."   입으로는 거짓말을 뱉으며 눈으로는 그녀의 표정을, 귀로는 숨소리를 쫒았다. 평소 눈치가 빨라 어떤 말이라도 금방 진실과 거짓을 구분 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 친구들과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술 한잔 기울일 때 전화가 오면 아무리 주변을 조용하게 세팅하고 집 인척 연기를 해도 그녀는 단번에 알아차리곤 했다. 매번 어떻게 그렇게 족집게처럼 알아맞추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오빠. 요즘 핸드폰은 기술이 발전해서 공기가.. 2024. 9. 21.
단편) Missing "저기 미선.. 아니 진아 씨.. 이 것 좀 복사해다 줄래요?"  이번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을 불러 회의 준비를 부탁했다. ​ "네? 네. 그럴게요. 몇 부나 해야 되나요?"​"아.. 음.. 8명이니까 10부만 부탁해요. 나 잠깐 나 갔다 와야 되니까 회의실 세팅까지 좀 해주겠어요?"​"네. 팀장님 다녀오세요... 팀장님.. 그런데 저는.."​그녀는 할 말이 있는 듯, 내 책상 앞에 서 잠시 망설이며 서 있었다. ​"아.. 아니에요. 다녀오세요."​"왜요? 진아 씨. 무슨 할 말 있어요? 그냥 얘기해 봐요."​"아니에요 팀장님. 급한 일 아니세요? 별일 아니니까 어서 가 보세요."​쌍꺼풀이 짙은 커다란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그녀는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들었다.​"그래요 그럼. 나중에라도 할 말이 있으.. 2024. 9. 21.
단편) 결혼. #2. 설겆이 싱크대에 담겨 있는 그릇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제저녁은 그녀가 솜씨를 발휘해 만들었던 참치김치찌개와 계란말이, 오이무침이었다. 반찬은 소박했지만, 밑반찬을 통에 담긴 채로 꺼내 먹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접시에 조금씩 담아내었기 때문에 그릇이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 정도 양이라면 금방 끝낼 수 있다.   오랜 자취생활을 했던 터라, 집안일에는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 설거지, 세탁, 청소, 음식까지. 나는 집안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덕분에 그녀가 어려워하는 일을 한 번에 해결해 낼 때면, 칭찬을 듣곤 했다. 다만, 그녀는 내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찮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대학 때까지 장인장모님 밑에서 곱게 생활했으니 그럴 수 있다. 보통 사람들.. 2024. 9. 21.
단편) 결혼. #1 전초전 사랑하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 수십 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는 두 시간의 짧은 결혼서약을 통해 부부가 되었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여전히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낮에는 양가 부모님과 친지 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저녁엔 각 자의 친구들과 결혼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전파하기 바빴다. 친구들은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다며 핀잔을 줬다. 그 사랑 얼마나 가는지 보자며 으름장을 놓는 친구놈도 있었지만, 하찮은 경험으로 판단 될 만큼 약한 사랑이었다면 결혼식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 호언장.. 2024. 9. 21.
에쎄이) 주말엔 좀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오는 날 종이배​"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된 요즘, 아이가 있는 집의 주말은 더욱 분주해졌다. 집안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의 짜증은 목요일에 최고조에 달한다. 마치 김빼기 직전의 압력밥솥처럼 아이들의 행동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밥솥 안에 가득찬 증기를 감당못한 아이들은 작게 삐집어진 틈사이로 연신 증기를 뱉어내며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금요일 특유의 안도감이 없었다면 분명 요란하게 폭발했을 터였다. 때문에 우리부부는 주중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도 전에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중이다.​지난 금요일에도 아이들은 현관문에 들어선 나에게 쪼로록 달려와, 내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커다란 질문을 날렸다.​"아빠. 내일은 우리 어디가요? 네?"​똘망똘망한 눈망울과 귀여운 표.. 2024.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