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마음만 앞선 한 남자가 있다. 평범한 대학을 나와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남자. 하지만 남자의 마음속엔 평범하지 않은 생각이 가득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나는 남들이 이루지 못한 경제적 독립을 할 거야. 한 10억쯤 벌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겠지?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지. 회사원 월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투잡을 해야 하나? 쓰리잡을 해야 하나? 인터넷쇼핑몰이 초기자금도 적고 잘만하면 대박 난다고 하던데, 인터넷 쇼핑몰을 해 볼까? 아냐. 투잡 쓰리잡 해도 푼돈 밖에 못 벌잖아. 그래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 내가 잘하는 게 뭐지? 소설을 써볼까? 요즘 웹소설이 핫하다는데, 회사원 작가도 많다던데. 어릴 적에 글 좀 쓴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음.. 이것도 아닌가? 그럼 어떤 걸 해서 돈을 벌지? 주식? 부동산? 코인? 모아 놓은 돈은 좀 있었나? 내 통장에 얼마나 있지...?'
남자는 통장잔고를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 폰을 든다. 까맣게 잠들어 있던 화면이 켜지자, 바탕화면에 잔뜩 깔려 있는 앱 아이콘 한귀퉁이에 알림이 표시되어 있다. 평소 알림이 떠 있는 것 자체가 싫었던 남자는 일단 알림이 켜져 있는 앱들을 열어 숫자를 지우기로 한다. 좌측상단부터 차례차례 앱을 열어 숫자만 지우고 앱을 닫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SNS앱을 열었을 때 화면에 뜬 새로운 동영상이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60대는 넘어보이는 노신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노신사는 영어로 이야기하지만, 화면엔 친절하게 커다란 글씨로 자막이 달려있다. 제목은 "빠르게 부를 쌓는 최고의 방법 5가지". 남자는 뻔한 이야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 지켜보기로 한다.
"월급은 당신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역발상을 해보세요. 돈을 벌려 하지 말고, 사업을 만들어 보세요. 위기가 기회입니다."
남자는 역시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지금 받고 있는 월급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남자는 아까 했던 생각 중에 쇼핑몰을 떠올린다. 소설이나 글을 쓰는 것은 사업이 아니니 글을 써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같이 한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남자는 무심코 화면을 위로 쓸어 넘긴다. 그러자 이번엔 아는 형님에 조정석이 나와 재미있는 표정으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는 조정석의 이야기가 궁금해 볼륨버튼을 눌러 소리를 키운다. 조정석 특유의 재치 있는 목소리와 아형 멤버들의 리액션이 들려오자 남자는 시선이 화면에 고정되며 입가엔 은근한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들고 있던 핸드폰을 고쳐 잡고 자리를 소파로 옮겨 편안한 자세로 핸드폰을 바라본다.
남자는 얼마간의 시간동안 꼼짝 않고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바라보며 웃었다 진지했다를 반복한다. 겨울이 끝나고 따듯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새싹이 돋아 났을 때의 일이다. 딸아이와 아파트 산책을 하다 막 피어난 민들레 홀씨를 불어주었기에 남자는 그 시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남자의 와이프가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남자의 몸을 휘감는다. 깜짝 놀라 남자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나 아내를 바라보며 묻는다.
"여보~. 무슨 일이야? 밖에 에어컨 틀었어? 왜 이렇게 추워?"
그러자 남자의 와이프가 남자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뭐? 에어컨? 이 인간이 미쳤나.. 10월 된지가 언젠데 춥긴 뭐가 추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핸드폰 좀 그만 보고 거실 청소하고 화장실 청소 좀 해. 어떻게 맨날 소파에 붙어서 핸드폰만 보고 있냐! 애들한테 창피하지도 않아?"
"아니~ 내가 핸드폰을 보면 얼마나 봤다 그래. 아 참 여편네. 말하는 뽄 새 하고는."
남자는 아내의 짜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탁자위에 놓아뒀던 담배를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간다. 흡연장으로 내려온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는 짜증스럽게 연기를 내뱉으며 말한다.
"아~ 이놈의 여편네. 내가 성공하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콧대를 콱 눌러줄 테니까."
그렇게 씩씩 거리며 담배를 두세 모금 피우자, 맘 속에 치밀어 올랐던 짜증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반팔만 입고 나온 남자는 그제야 10월의 차가운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 벽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 바람을 피한다. 앉으려고 보니 반바지에 찔러 넣고 온 핸드폰이 여간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다. 남자는 앉다 말고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손에 들고는 담배 한 모금을 더 내뱉는다.
남자가 핸드폰을 들어 까만 화면을 쳐다보자 핸드폰 화면이 풀리며 아까 보던 영상들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남자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지며 다시 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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