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먹고 있었어? 그녀가 물었다.
어. 토스트. 그냥 식빵에 버터 조금 발라서 구운 거야. 당신도 줄까?
응. 맛있겠네. 그녀는 식탁에 앉아 기지개를 켜며 팔을 덮어 식탁에 엎드리며 말했다.
왜? 아직도 피곤이 안풀리는거야?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냐. 그냥 약간 찌뿌등한 것뿐이야. 금세 괜찮아질 거야. 자기가 만든 맛있는 아침을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예쁘게 웃음을 날려주는 그녀의 얼굴은 편안한 행복감이 가득했다.
그래. 금방 만들어 줄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냉장고에서 버터를 다시 꺼내 들고는 적당히 달구어진 팬위에 눌러 버터향을 입혔다. 식빵을 두 조각 꺼내어, 팬 위에 놓고는 식빵 윗면에 버터를 조금 덜어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면 식빵의 양쪽면에 골고루 버터맛이 배어 바삭해진 빵을 맛있게 익혀준다. 한쪽면에 2분씩이면 충분한 토스트. 한 쪽면이 구워질 동안 냉장고에서 우류를 꺼낸 후 크리스털 유리잔에 충분히 따른 후, 전자랜지에 넣고 돌렸다. 3분 안에 완성되는 이 따뜻한 우유 한잔과 토스트 2조각이면 그녀가 행복한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침실에서 핸드폰을 들고와 음악을 틀었다.
난 자기가 좋아하는 이 바이올린 소리가 좋더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중 제 1악장. 영화 클래식을 보고 처음 알게 된 음악이었는데, 그 선율이 너무 좋아, 영화만 10번은 더 돌려 본 것 같았다. 얼마 전 그녀에게 추천해 주었더니, 자주 찾아 듣곤 했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이 곡이 선택된 모양이었다.
응. 이거 좋지? 지금 분위기하고 잘 어울리네. 토스트와 커피. 그리고 따뜻한 우유한잔.
우유도 덥혔어?
응. 자기 따듯한 우유 좋아하잖아.
히. 우리 자기는 완전 센쓰쟁이네~
ㅎㅎ 뭘 이런 걸로 감동받고 그래. 내가 얼마나 자기를 생각하며 사는데.
아.. 회사에서도 자기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왜? 새로 온 상사가 아직도 괴롭히는 거야?
말도 마.. 아주 노처녀 히스테리가 장난이 아니라니까. 더 심해졌어. 아 글쎄...
어! Thanksgiving이다. 오늘 선곡이 좋은데?
그녀가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슬프면서 맑은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George Winston의 명곡이 말이다.
자기? 지금 내가 말하는데 말 끊는 거야?
어? 아니야.. 그렇게 됐나? 미안 미안. 갑자기 너무 오랜만에 듣는 곡이라서 그래. 알잖아. 내가 조지 윈스턴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이야. 미안해. 그래서 그 노처녀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래?
아냐. 됐어. 그냥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고..
본의 아니게 말을 끊은 것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고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가만히 토스트만 씹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 진짜 미안 미안. 거기서 그 음악은 왜 튀어나와가지고 우리 자기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말았네. 미안해.
우유 잔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이구.. 됐네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손을 뿌리치며 우유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녀. 그나저나 이 토스트 맛있다. 역시 자기는 요리를 잘해. 그렇지? 나 대신 맨날 자기가 요리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 역할 바꾸면 안 돼? 응 자기야?
뭐야.. 벌써 힘들다고 하는 거야? 이제 3개월밖에 안되었는데??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서로 잘하는 걸 하는 게 더 효율적인 거잖아.
어이구. 자기가 잘하는 것은 있고?
아! 그런가? 히히..
그냥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하시지..?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냥 토스트가 맛있어서 칭찬하는 거야. 어쩜 아무것도 안 바른 것 같은데 이렇게 맛있지? ^^ 자기는 못하는 게 없네.
불리해지려고 하니 은근히 슬 적 넘어가는 그녀의 임기응변 능력은 일품이었다.
괜히 아부 떨지 말아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칭찬하는 소리가 밉게 들릴 리가 없다. 얼굴에 가만히 번진 미소를 그대로 들어낸 채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이제 결혼 3개월의 신혼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집에서만 곱게 자란 그녀가 집안일을 할 줄 아는 것은 전무했다. 오죽하면 장모님께서 뭐 하나라도 가르쳐서 보내야 한다고, 결혼 날짜를 1년이나 늦추자며 강하게 이야기하셨을 정도니까 얼마나 그녀가 집안일에 문외한인지는 굳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강경하시던 장모님을 설득하는데만, 1달 가까이 소비하여 결혼 날짜를 앞당겨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오랜 자취 경력으로 웬만한 집안일은 장모님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 나서야, 장모님께서는 마지못해 허락을 하신 거였다.
허락을 하시면서도 장모님은 연신 내 두 손을 꼭 잡으시고,
절대 혼자서 할 생각 하지 말고, 꼭 자기 딸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는 다짐을 받으셨더랬다. 사실 그때만 해도 뭐 얼마나 심각할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사귀는 동안에 우리 집에 와서 보여줬던 부지런함과 그녀 집에 방문했을 때, 그녀 방을 봤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장모님이 그렇게 걱정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깔끔하신 장모님 성격 탓에 평범한 딸을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그때는 살짝 내가 맘에 차지 않아서 하시는 일종의 결혼 반대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결혼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진심이었다는 것이 바로 밝혀졌다.
그녀는 무남독녀의 외동딸로 집안에서 온갖 귀여움은 다 받고 자랐다. 유독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마음이 남다른 장인어른 덕분에, 그녀는 본인의 얼굴을 씻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무려 30년을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온실 속 화초로 커왔다는 사실은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간 순간부터 장인어른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 정도일 줄은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결혼 후 첫 1달은 정말이지 결혼을 한 것인지 식모살이를 시작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 그녀는 밥은 물론, 라면조차 온전히 끓여 내는 법이 없었고, 설거지는 물론, 세탁기를 작동시키는 방법조차 정확히 숙지하고 있지 못했다.
한 번은 청소기를 돌리고 난 후 선을 어떻게 넣는지 몰라, 선을 잡고 속으로 밀어 넣느라고 정말 고생했노라며 야근을 마치고 들어온 나에게 무용담을 한 시간 동안 늘어놓은 적도 있었다. 도대체 우리나라 기술자들은 기본이 안되었다면서.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날이 머지않은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청소기 선을 일일이 밀어 넣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러니 대한민국 주부들이 어디 허리 펼 일이 있겠느냐며 한참을 설명하던 그녀 앞에서, 내가 정말 쉽게 부착되어 있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눌러보고 싶도록 만들어져 있는 버튼을 눌렀을 때, 그녀는 한동안 얼음이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 때문에 첫 한 달간은 사랑의 힘으로 내가 앞장서서 모든 일을 해 나갔었다. 사무실에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으로 곧장 귀가해서 맛있는 저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또 청소며 빨래, 설거지 화장실 청소까지도 모두 그녀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또 빠르게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 모든 일을 신경 써낸 다는 사실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 스스로를 옥죄는 사슬이 되어 내 목을 졸라왔다.
처음엔 중국의 한족 남자들을 생각하며 나 또한 그럴 뿐이라고 위로하며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한족 남자들을 찾지 않더라도, 신혼의 달콤함이 이 정도의 번거로움을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집에 한 번씩 장모님이 다녀가실 때마다 날라 오는 메시지는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계속 해 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매번 각인시켜 주셨다.
자네 그러다 쓰러지네. 꼭 딸에게 집안일을 가르쳐주게나.
우리 딸은 1달만 자네가 해주면, 영원히 자네가 해주길 바라는 딸이니 꼭 집안일을 가르치게나.
이제 1주 남았네. 평생 한족의 남자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는 편이 좋겠네. 등등
장모님의 메세지는 점점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결국 나는 그녀에게 이 모든 사실을 고백하며 지금도 무척 행복하지만, 우리가 함께 한다면 더욱 행복해질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때 그녀의 반응은
여태 그 많은 걸 혼자 짊어 지려고 했었냐며 나랑 결혼 한 순간부터 모든 것을 각오하고 왔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연습장과 볼펜을 가지고와 테이블에 날 앉혀 놓고는,
우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씩 기록해 나가 보는 거야. 그리고, 서로 잘하는 것들을 위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거지. 그렇게 하면 서로의 업무영역도 확실해지고, 또 굉장히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나누어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 자기 혼자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나랑 같이 하자. 알았지?
라고 엄청나게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의 고민을 싹 날려주었었다. 그때 그녀가 보여준 그 감동적인 언어는 직접 들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기분을 절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야 말았다. 그것도 실시간 라이브로 말이다. 그러니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에서는 내 너를 위해 이 한 몸 부서질 때까지 최선을 다할 테니 당신은 그냥 장인어른께 받았던 사랑 나에게 받는다 생각하고 편히 쉬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메세 지속 장모님의 말씀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려 간신히 말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 우리는 집안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또 나름 세부적으로 집안일을 정의해 볼 수 있었다. 먼저 큰 대분류를 생각하고 중분류 소분류 순으로 나누어 갔으며, 그것 또한 세부적인 주기와 방법 등 까지 나름 세세하게 기록해 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굉장히 진지하게 표를 작성했고, 첫 1달간은 모든 것이 완벽할 만큼 맞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작은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제가 뭐였는지 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의 눈에는 확실하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문제점을 그녀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분명하게 실력이 향상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실력의 향상은 나에겐 조금이었지만, 그녀 스스로는 엄청난 발전을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깎아 내리려고 하는 말은 차마 내 입으로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즉시 그녀는 겉으로 괜찮은 척을 하더라도 분명 속으로는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상처를 받는 것보다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 백번 더 나은 선택임이 분명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어 어머님이 집에 다녀가시고 난 후, 메시지가 왔다. 자네, 괜찮은 건가? 그렇게 집안일을 엉망으로 하는 걸 내버려 두면 안 된다네. 처음엔 힘들겠지만,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편이 좋을 듯하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모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죄가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지금은 처음이니까 괜찮아 보여도, 처음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 딸은 영원히 모르게 되는 거라네. 그때가 되면 그것은 딸아이의 채임이라기보다는 자네의 책임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라네.
어머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진밥이나 된밥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거지는 물에 헹구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세척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청소는 담당 혼자서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도 있다. 집안일을 몰아서 하는 것은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도 알려줘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더 잘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장모님께 설득되고 난 후 그녀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최대한 마음을 다치지 않게 말이다.
자기야. 그릇에 뭐가 묻었어.
어? 아까 설거지했는데 어디 봐
어? 아까 분명히 설거지 깨끗하게 했는데. 미안해 자기야. 내가 다시 씻어 올게.
아냐. 여보. 지금은 그냥 쓰고, 이거 먹은 거 할 때 다시 씻자.
자기야. 자기 물건 쓰고 난 후엔 정리정돈을 좀 부탁해도 될까? 내가 자기 물건까지 다 정리할 수는 없거든.
어? 어.. 그래.. 뭐야 자기 자기 일을 지금 나한테 떠 넘기는 거야?
아냐. 아냐.. 그런 거 아냐. 떠 넘기는 게 아니고, 자기가 쓴 건 자기가 정리해줘야지. 내가 화장품을 일일이 어디다 놓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내 범위는 청소지 정리 정돈이 아니야..
헐. 여보 지금 나랑 장난해?
여보야 세탁기 돌릴 때는 색깔별로 옷을 분리해서 돌려야 돼. 이 옷 힌 옷인데 물이 들어서 못 입게 됐잖아.
아 그래? 몰랐어. 미안해. 속상하겠다.
그렇게 소소한 지적질이 계속되면 될수록 처음엔 잘 이해하고 지내던 우리였지만, 조금씩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녀는 집안일 이야기만 나오면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고, 나는 그녀가 두려워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이제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않은 채로 시계만 자꾸 지연시키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매사가 불안했고, 그 불안함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집안일에 대한 할당량은 늘어만 갔고, 그녀는 점점 할 일을 일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문제가 있다. 이제는 어떻게는 이 폭탄을 터트려야 할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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