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말에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이야기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라는 속담으로 더 유명한데, 어젯밤 친구의 SNS 사진 한 장에 배가 아파 잠을 설친 통에 아침 컨디션이 엉망이다.
며칠 전부터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밤 9~10시경 잠들어 5~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2~3일간 했었다. 몸 컨디션도 좋고, 가족들 모두가 아침 특유의 부산스러움에서 해방되어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할 수 있었다. 3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서로 씻겠다며 싸울 일도 없고, 합창부 연습으로 제일 먼저 집을 나서는 큰 딸아이도 아침밥을 여유롭게 먹고서도 시간이 남는다며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되는 여유까지 부렸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아내와 나는 진공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했다. 세탁기까지 돌리는 사치를 부리고 나서도 시간이 남으니 우리 둘은 결혼 후 처음 느끼는 상쾌한 아침 풍경에 '이거다!' 싶었던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전쟁 같은 아침은 서로의 부지런함이면 해결된다!
는 진리를 이제야 몸으로 깨우친 것이었다. 여유로운 아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초저녁에 잠을 자야겠다고 합의했었는데, 어제는 저녁 무렵 먹은 박카스 한 병이 문제가 되었던지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기를 십여분. 베개도 바꿔보고 자세도 바꿔보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지기라도 하듯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컴퓨터를 켜고 앉아 새벽에 작업하려던 원고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15인치 크기의 액정에서 쏟아지는 불빛에도 아내는 깊은 잠에 빠졌다. 직장에서 분명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고는 체력이 방전된 게 분명했다. 해 줄 것이 마땅찮아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주고는 컴퓨터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서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썰어야 했다. 무말랭이나 담글 정도의 무를 썰어낸 후에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아내와 약속한 기상시간을 고려하면 5시간도 못 잘 것 같았다. 서둘러 식탁을 정리한 후 침대에 다시 누웠다.
적당한 피곤함이 전신으로 퍼져가며 금세 잠들 것만 같았건만, 정작 침대에 눕자 어떤 자세로 누워도 온 몸이 편치 않았다. 팔이고 허리고 다리고 어디 하나 불편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커다란 베개를 끓어 안고는 핸드폰을 켰다. 할 일 없이 인터넷 뉴스나 보고 아까 들어가 봤던 SNS에도 또 들어가 보며, 방황하는 눈동자와 손가락이 안쓰러워 휴대폰을 머리맡에 신경질 적으로 집어던지고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3분이나 지났을까? 띠리링~ 잠들어가던 귓가에 알림음이 울렸다. 정말 어렵게 잠들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유난히 또렷한 알림음 하나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빨갛게 화면에 떠진 알림 표식을 따라 조금 전에 들어갔었던 SNS를 열었다. 그곳엔 사진이 한 장 새로 올라와 있었다.
#개봉박두 #준비 #시작 #인생걸었다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걸린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 사진 한 장.

친구의 사진은 아니다.
갑자기 온몸의 세포가 깨어났다.
내가 그렇듯 별 볼일 없는 친구였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도, 얼굴이 그렇게 잘 생기지도, 성격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술을 좋아해 친구들은 많았지만 30대의 삶이 그렇듯 일상에 찌들어 인맥이 많아봐야 아쉬움만 컸을 것이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누구나 살고 있는 당연한 삶. 전세든 매매든 대출을 갚아야 하고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큰 욕심에 서서히 침몰해가는 구멍 난 돛단배를 탄 보통의 삶을 사는 것 같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과 3분 전까지는 말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각, 거리를 향해 커다랗게 뚫린 유리창 사이로 은은한 조명이 어둠을 지우는 사진.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 안으로 보란 듯이 놓여있는 테이블과 의자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실루엣만 잡힌 남자의 모습에서 어둠에 가려진 표정이 웃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분명 나의 착각 일 것이다.
분명 축하할 만한 일인데 선뜻 좋아요가 눌러지지 않았다. 안 쓰던 댓글도 달아서 이것저것 물어봐도 좋을 텐데 가만히 사진만 바라보며 생각만 복잡하다.
어떻게 돈을 마련했을까?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상권은 좋은 곳인가?
인테리어를 셀프로 하는 건가? 바리스타 자격증은 딴 건가?
와이프 설득은 어떻게 했지? 도대체 무슨 깡인 거야?
슬금슬금 걱정이 앞서며 이런저런 질문거리들이 온통 머릿속을 헤집기를 수 십 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모습을 바꾸어 아랫배에 쌓이는 듯했다. 생각이 계속될수록 그 무게는 더해져 아랫배가 묵직해지며 속이 살살 쓰리다.
'속이 왜 이렇지?'
작년 건강검진에서 나온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하는 듯했다.
한 동안 약으로 다스린 탓에 최근엔 약을 먹지 않아도 이 정도까지 속이 쓰린 적이 없었는데 결국 핸드폰을 끄고 거실로 나와 위장약 두 알을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이대로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불 꺼진 소파에 털썩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야말로 털썩이다.
방금 먹은 약기운 탓인지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차가운 가죽 소파의 감촉이 날카롭게 살결을 파고들며 힘 빠진 세포들을 자극하지만, 이미 온몸이 방전되어 버린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둠은 늘어진 내 몸위로 가만히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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